“완료율 97%! 오늘도 생산적이네!”
Todoist를 쓰던 2주 동안, 나는 매일 이 숫자를 확인하는 게 즐거웠다.
문제는, 그 97%에 포함된 “할 일”의 90%가 “Todoist에 할 일 정리하기” 같은 것들이었다는 점이다.
완벽한 할 일 관리 앱을 찾아서
Todoist는 할 일 관리 앱의 베스트셀러다. 수많은 생산성 유튜버들이 추천하고, “GTD(Getting Things Done) 마스터”들이 극찬하는 도구다.
나도 그 매력에 빠졌다:
– 프로젝트별로 할 일 분류
– 우선순위 설정 (P1, P2, P3, P4)
– 태그로 컨텍스트 분류 (#회사, #집, #급함)
– 반복 작업 자동 생성 (매일, 매주, 매월…)
– 할 일 완료 통계 및 생산성 트렌드
완벽했다. 이론상으로는.
2주간의 Todoist 라이프
첫째 날: 설레는 시작
모든 할 일을 Todoist에 옮겼다.
– “이메일 확인” → #회사 #루틴 P3
– “운동하기” → #건강 #습관 P2
– “프로젝트 A 기획서 작성” → #회사 #프로젝트A P1
– “책 읽기” → #자기계발 #습관 P3
30분 만에 40개의 할 일이 만들어졌다.
“이제 내 인생이 정리됐어!”
3일째: 태그 지옥
태그가 점점 늘어났다.
처음엔 #회사, #집, #급함 정도였는데…
– #회사-긴급
– #회사-중요
– #회사-루틴
– #집-청소
– #집-요리
– #자기계발-독서
– #자기계발-강의
– #건강-운동
– #건강-식단
태그가 20개를 넘어가자, “이 할 일은 어느 태그를 달아야 하지?” 고민하는 시간이 실제 할 일을 하는 시간보다 길어졌다.
1주일째: 알림 공포증
Todoist는 알림을 보낸다. 정말 많이.
- 09:00 “이메일 확인” 알림
- 09:15 “프로젝트 A 회의 준비” 알림
- 10:00 “기획서 작성 시작” 알림
- 12:00 “점심 후 커피 마시기” 알림 (네, 이것까지 할 일로 넣었습니다…)
- 14:00 “오후 업무 시작” 알림
하루에 15번 이상 알림이 울렸다. Slack의 끊임없는 알림이 집중을 깨뜨린 것과 똑같은 패턴이었다.
결국 알림을 꺼버렸다. 그러자 Todoist를 열어볼 이유가 사라졌다.
2주째: 완료율 집착
Todoist는 매일 완료율을 보여준다.
처음엔 동기부여가 됐다. “오늘 완료율 100%!”
그런데 점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완료율을 높이기 위해 쉬운 할 일만 하게 됐다.
- “물 마시기” (1초 만에 완료)
- “책상 정리” (30초 완료)
- “Todoist 확인하기” (이게 할 일이라고?)
정작 중요한 “프로젝트 A 기획서 작성”은 며칠째 미루고 있었다. 왜냐면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완료율을 낮출 수 있으니까.
도구가 나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명확했다
1. 할 일을 정리하는 것이 또 다른 할 일이 됨
- 태그 정리
- 우선순위 조정
- 프로젝트 재분류
- 반복 작업 설정 확인
- 마감일 조정
이런 “메타 작업”에 하루 30분 이상을 썼다. 노션에서 완벽한 템플릿과 데이터베이스를 만드느라 실제 작업을 못했던 것과 똑같은 함정이었다.
2. 도구가 복잡할수록 쓰기 귀찮아짐
할 일 하나 추가하는 데 생각해야 할 것:
– 어느 프로젝트에 넣을까?
– 우선순위는?
– 태그는 뭘 달까?
– 마감일은?
– 반복 설정은?
그냥 “기획서 작성”이라고 적으면 되는데, 5단계를 거쳐야 했다.
결국 급한 할 일은 메모장에 적고, 나중에 Todoist로 옮기겠다고 생각했다가… 안 옮겼다.
3. 숫자에 휘둘리게 됨
완료율, 카르마 포인트, 연속 완료 일수…
Todoist는 gamification을 잘 활용한다. 너무 잘 활용한 나머지, 게임처럼 느껴졌다.
실제 생산성이 아니라, Todoist 점수를 올리는 게 목표가 되어버렸다. Evernote에서 저장한 노트 개수에만 집착하며 정작 다시 보지 않았던 것처럼, 숫자가 본질을 가려버렸다. 독서 앱에서 “연간 50권”이라는 목표 때문에 얇은 책만 골랐던 것도, 시간 추적 앱에서 생산성 점수 85%를 달성하고도 정작 중요한 일은 하나도 못 끝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결국 돌아간 곳: 종이 노트
2주 만에 Todoist를 지웠다.
그리고 다시 종이 노트로 돌아갔다.
오늘의 할 일 (최대 3개):
1. 프로젝트 A 기획서 1차 초안
2. 팀 회의 참석
3. 운동 30분
끝.
태그도 없고, 우선순위도 없고, 알림도 없고, 완료율도 없다. 단순하게 유지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캘린더에 여백을 남겨두기로 결정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냥 해야 할 일만 있다.
2주 vs 종이 노트 한 달 비교
Todoist 2주:
– 기록한 할 일: 120개
– 실제 완료한 중요 업무: 2개
– Todoist 관리에 쓴 시간: 매일 30분 = 총 7시간
종이 노트 한 달:
– 기록한 할 일: 90개 (하루 3개 × 30일)
– 실제 완료한 중요 업무: 18개
– 노트 관리에 쓴 시간: 매일 1분 = 총 30분
숫자가 말해준다.
배운 교훈: 단순함이 이긴다
Todoist가 나쁜 앱이라는 게 아니다. 정말 잘 만들어진 앱이다.
문제는 나에게는 과했다는 것이다.
할 일 관리는 복잡해질수록:
– 할 일 자체보다 “관리”에 시간을 쓰게 됨
– 도구가 주인이 되고 내가 종이 됨
– 숫자에 휘둘려 중요한 일을 회피하게 됨
완벽한 수치를 추구하다 보면 오히려 본질을 잃게 된다. 습관 트래커의 연속 일수 집착이 그랬고, Todoist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할 일 관리 도구는 가장 단순한 도구다.
당신의 할 일 앱, 도와주는가 방해하는가?
한 번 생각해보자.
- 할 일을 추가하는 데 10초 이상 걸리는가?
- 앱 열었다가 설정만 만지다 나온 적 있는가?
- 쉬운 할 일만 골라서 하게 되는가?
- 완료율/점수를 위해 불필요한 할 일을 추가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앱은 당신을 돕는 게 아니라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화면 시간 앱으로 목표 숫자 맞추기에 집착하던 것도 같은 함정이었다. 숫자 자체가 목표가 되면, 본래 목적을 잃게 된다.
내가 선택한 방법
지금은 이렇게 한다:
아침 5분:
– 종이에 오늘 할 일 3개 적기
– 중요도 순으로 번호 매기기
– 끝
저녁 1분:
– 완료한 것 체크
– 못한 건 내일로 옮기거나 버리기
하루 6분.
Todoist 쓸 때는 30분이었다.
24분을 아꼈고, 그 시간으로 실제 일을 더 많이 했다.
마지막으로
생산성 도구가 생산성을 떨어뜨릴 수 있다.
아이러니하지만 사실이다.
도구가 복잡할수록, 당신은 도구를 관리하느라 정작 중요한 일을 못 하게 된다.
가장 좋은 도구는 가장 방해가 적은 도구다.
할 일에 우선순위 매기느라 정작 일을 못 했던 경험도 같은 맥락이다. 시스템이 복잡하면 시작이 늦어진다.
Todoist를 2주 만에 지운 건 실패가 아니다.
나에게 맞는 단순함을 찾은 과정이었다.
리마인더 알람을 50개 설정했지만 모두 무시했던 것도 마찬가지였다. 도구가 복잡할수록, 오히려 효과가 떨어진다.
이 글은 “Productivity Paradox” 시리즈의 세 번째 포스트입니다. 생산성 도구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솔직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