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정보를 놓치면 안 돼!”

Feedly를 처음 설치하던 날, 나는 진지했다.
6개월 후, 구독 피드는 200개가 됐다. 읽지 않은 글은 47,382개. 실제로 읽은 건 3개.
정보의 시대, 뒤처지면 안 돼


모든 건 “정보력”이라는 말에서 시작됐다. 좋은 블로그, 뉴스레터, 업계 소식을 빠르게 읽는 사람이 앞서간다고 들었다.
“RSS 피드 리더를 쓰면 한 곳에서 다 볼 수 있대.”
유튜브에서 본 생산성 유튜버는 아침마다 RSS로 50개의 글을 훑어본다고 했다. 그렇게 트렌드를 파악하고, 인사이트를 얻는다고.
“나도 그렇게 해야지.”
생산성 뉴스레터를 100개 구독했는데 읽은 건 0개였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때와 똑같은 패턴이었다.
구독 리스트가 늘어났다

처음엔 10개로 시작했다.
- TechCrunch
- The Verge
- 개발 블로그 3개
- 디자인 뉴스 2개
- 마케팅 블로그 2개
깔끔하게 카테고리도 나눴다.
일주일 뒤, 20개가 됐다. “이것도 괜찮네” 하면서 추가했다.
한 달 뒤, 70개. “놓치면 안 되는” 블로그들이 계속 눈에 띄었다.
3개월 뒤, 127개. 카테고리가 15개로 늘어났다.
6개월 뒤, 200개. 더 이상 카테고리 정리도 안 했다.
읽지 않은 글 47,382개

매일 아침, Feedly를 열었다. 화면에 뜨는 숫자.
읽지 않은 글: 47,382개
숨이 막혔다.
어제 하루 동안 새로 들어온 글만 847개. 전부 읽으려면 몇 시간이 걸릴까? 계산도 하기 싫었다.
“일단 제목만 훑어보자.”
제목을 훑어보는 데만 40분이 걸렸다. 실제로 클릭해서 읽은 건 3개.
나머지 844개는? “나중에 읽지” 하고 넘겼다.
그 “나중에”는 오지 않았다. 나중에 읽기에 저장만 하고 영원히 안 읽었던 경험과 정확히 같은 패턴이었다.
정보 과잉의 역설
RSS 피드가 늘어날수록, 오히려 아무것도 읽지 않게 됐다.
10개일 때는 전부 읽었다. 30개쯤 되니까 골라 읽었다. 100개가 넘어가니까 아예 포기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선택의 역설”이었다. 선택지가 너무 많으면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한다.
매일 아침 47,000개의 글 중에서 뭘 읽을지 고르는 건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안 읽었다.
“모두 읽음으로 표시” 버튼
Feedly에는 신의 기능이 있다. “모두 읽음으로 표시”.
처음엔 쓰기 싫었다. “읽지도 않았는데 읽음 처리하면 안 되지.”
2개월 차, 처음으로 눌렀다. 읽지 않은 글 12,000개가 한 번에 사라졌다.
죄책감이 들었다. 중요한 정보를 놓쳤을 수도 있으니까.
3개월 차부터는 매일 눌렀다.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적으로.
구독 → 안 읽음 → 전체 삭제 → 구독 → 안 읽음 → 전체 삭제
이게 내 RSS 루틴이 됐다.
구독을 위한 구독
어느 순간, 구독 자체가 목적이 됐다.
좋은 블로그를 발견하면 바로 구독. “나중에 읽어야지.”
구독 목록이 늘어나면 뿌듯했다. “나 정보력 좋은 사람이야”라는 착각.
실제로 읽지 않아도 상관없었다. 구독해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RSS 리더는 “나중에 읽기” 도구가 아니라 “안 읽을 글 저장소”가 됐다. Evernote에 2,847개의 노트를 모았지만 다시 본 건 50개도 안 됐던 상황과 다를 게 없었다.
진짜 필요한 정보는 어차피 온다
6개월 동안 200개 피드를 구독하면서 깨달은 게 있다.
진짜 중요한 뉴스는 어차피 내 귀에 들어온다. 친구가 말해주든, 트위터에서 보든, 회사 슬랙에서 공유되든.
200개 피드를 구독했지만, 정작 중요한 건 다른 경로로 알게 됐다.
AI 붐? 뉴스레터보다 동료한테 먼저 들었다.
새로운 프레임워크?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봤다.
업계 빅뉴스? 단톡방에서 누가 링크 던졌다.
RSS로 “먼저” 알게 된 중요한 정보는 사실상 없었다.
피드 정리의 날

결국 대청소를 했다.
200개 피드를 전부 삭제했다. 아까웠지만 결단했다.
그리고 딱 5개만 다시 구독했다.
- 내 분야 핵심 블로그 1개
- 영감 주는 개인 블로그 2개
- 주간 요약 뉴스레터 2개
5개만 구독하니까 전부 읽을 수 있었다. 하루에 글 3-5개. 15분이면 충분했다.
읽지 않은 글 47,382개 대신, 읽은 글 5개.
숫자는 줄었지만 실제로 얻는 건 늘었다.
줄이니까 보이더라
200개 피드는 노이즈였다. 신호가 묻혀버렸다.
5개로 줄이니까 진짜 좋은 글이 보였다. 제대로 읽고, 생각하고, 메모할 여유가 생겼다. 클라우드에 모든 걸 저장했는데 정작 찾지 못했던 경험에서도 느꼈듯이, 많이 모으는 건 의미가 없다.
예전엔 제목만 훑었다. 지금은 한 글을 20분 동안 천천히 읽는다.
예전엔 “정보 수집”을 했다. 지금은 “학습”을 한다.
양이 아니라 질이었다. 200개 피드의 제목보다 5개 피드의 본문이 낫다. 북마크를 완벽하게 정리했지만 정작 사용하지 않았던 상황과 똑같은 교훈이다.
정보 불안은 착각이다
RSS 구독을 줄이면서 불안했다. “중요한 거 놓치면 어떡하지?”
6개월 지났다. 놓친 건 없었다. 적어도 내 삶에 영향을 준 건.
정보를 놓친다는 불안은 대부분 착각이다. 정말 중요한 건 알아서 나한테 온다.
오히려 200개 피드를 구독할 때 더 많이 놓쳤다. 너무 많아서 아무것도 못 읽었으니까.
지금의 정보 루틴
지금 내 정보 수집은 이렇다.
아침 (15분)
– RSS 5개 확인
– 좋은 글 있으면 메모
저녁 (5분)
– 오늘 본 글 중 하나 복습
– 필요하면 정리
주말 (30분)
– 주간 뉴스레터 2개 정독
일주일에 1시간. 예전엔 하루에 1시간 이상 썼는데 정작 읽은 건 없었다.
시간은 90% 줄었고, 배운 건 10배 늘었다. 메모는 했는데 다시 보지 않았던 함정에서 벗어난 셈이다.
결론
RSS 200개를 구독해봤자, 읽지 않으면 의미 없다.
중요한 건 구독 숫자가 아니다. 실제로 읽고 소화하는 양이다.
5개 피드로 충분하다. 아니, 5개로 충분해야 한다. 그래야 읽는다.
정보 수집 도구가 스트레스 원인이 되면 뭔가 잘못된 거다.
지금 Feedly를 열면 읽지 않은 글이 0개다. 이 숫자가 47,382개보다 훨씬 마음 편하다. 비밀번호 관리자를 4개나 쓰다가 로그인을 못 했던 상황에서 배운 것과 같다. 도구가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