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마인더를 300개 설정했는데 정작 확인은 안 했다

잊는 게 무서웠다

“아, 맞다! 이거 깜빡할 뻔했네.”

중요한 회의를 잊을 뻔한 적이 있었다. 그 이후로 모든 걸 기록하기 시작했다.

“리마인더만 있으면 안 잊어버리겠지!”

완벽한 리마인더 시스템

스마트폰 화면에 가득한 알림, 리마인더 앱의 긴 목록, 다양한 시간대의 알림들

모든 것을 리마인더로:

업무 관련:
– 회의 30분 전 알림
– 마감일 3일 전 알림
– 이메일 확인 (하루 3번)
– 프로젝트 진행 체크 (주 1회)

건강 관련:
– 물 마시기 (2시간마다)
– 스트레칭 (1시간마다)
– 눈 운동 (30분마다)
– 운동 시간 (매일 오후 7시)
– 약 먹기 (매일 아침 9시)

습관 관련:
– 책 읽기 (매일 밤 10시)
– 일기 쓰기 (매일 밤 11시)
– 명상 (매일 아침 7시)
– 영어 공부 (매일 오전 8시)

생활 관련:
– 청구서 납부일
– 구독 서비스 결제일
– 생일 축하 메시지
– 정기 점검일
– 쓰레기 버리는 날

총 리마인더: 300개

하루 평균 알림: 30-40개

“이제 완벽해! 아무것도 안 잊어버릴 거야!”

알림 지옥의 시작

아침 7시:

띵! “명상 시간입니다”

“아… 5분만 더 자자”

아침 7시 30분:

띵! “물 마시기”
띵! “스트레칭”

“일어났으니까 알아서 하지… 무음”

아침 8시:

띵! “영어 공부 시간”

“오늘은 바쁘니까 패스”

아침 9시:

띵! “약 먹기”
띵! “이메일 확인”
띵! “물 마시기”

“알림이 왜 이렇게 많아…”

무음 처리.

오전 10시:

띵띵띵띵띵! (5개 알림)

  • 회의 30분 전
  • 스트레칭
  • 물 마시기
  • 눈 운동
  • 프로젝트 체크

“진짜 짜증나네”

전체 무음.

알림 피로

알림 배지가 99+로 표시된 여러 앱들, 무음 처리 버튼을 누르는 손

2주 후, 패턴이 생겼다.

알림 반응:
1. 처음 3일: 모든 알림 확인 ✅
2. 4-7일: 중요한 것만 확인 ⚠️
3. 8-14일: 대부분 무시 ❌
4. 15일 이후: 전체 무음 🔇

심리적 변화:

1주차:
“띵!” → “오, 물 마실 시간이네!” → 실행

2주차:
“띵!” → “아 맞다, 스트레칭…” → 나중에

3주차:
“띵!” → “또 알림이네” → 무시

4주차:
“띵띵띵!” → (알림 소리도 안 들림) → 습관화된 무시

알림 피로(Notification Fatigue)가 왔다.

중요한 걸 놓쳤다

어느 날 동료가 물었다.

“오늘 미팅 왜 안 왔어?”

“응? 무슨 미팅?”

“리마인더 안 받았어?”

“아… 알림이 너무 많아서 전부 무음 처리했거든…”

확인해보니:
– 미읽은 알림: 127개
– 놓친 중요 일정: 3개
– 지난 마감일: 2개

역설:
알림을 많이 설정할수록, 중요한 걸 더 놓쳤다.

리마인더의 함정

함정 1: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이 섞임

알림 목록:
1. ⚠️ 중요 회의 30분 전
2. 💧 물 마시기
3. 👁️ 눈 운동
4. ⚠️ 프로젝트 마감 3일 전
5. 🏃 스트레칭
6. 💧 물 마시기
7. 📧 이메일 확인

문제:
– 7개 중 중요한 건 2개
– 나머지 5개는 사소함
– 하지만 알림은 모두 똑같이 생김
– 구분이 안 됨

결과:
중요한 것도 사소한 것처럼 취급됨.

함정 2: 책임 회피

“리마인더 설정했으니까 괜찮아”

= 기억할 책임을 리마인더에게 전가

문제:
– 리마인더만 믿음
– 실제론 기억 안 함
– 알림 놓치면 끝

비유:
자명종 10개 맞춰놓고 안심하는 것.

자명종이 울려도 안 일어나면 의미 없다.

Evernote에 노트를 수집만 하고 다시 보지 않았던 것처럼, 리마인더 설정 = 실행 착각이 생긴다.

함정 3: 알림 인플레이션

처음:
– “회의 알림만 설정하자”
– 10개

그 다음:
– “이것도 잊으면 안 되니까…”
– 30개

점점:
– “저것도 리마인더로…”
– 100개

결국:
– “모든 게 리마인더로…”
– 300개

문제:
알림이 늘어날수록 개별 알림의 가치는 떨어진다.

함정 4: 알림 = 실행 착각

“리마인더 설정했어” ≠ “실행했어”

하지만 뇌는 착각한다.

심리학 연구:
– 계획을 세우면 뇌는 일부 보상을 미리 받음
– “할 거야”라고 생각하면 이미 한 것 같은 느낌
– 실제 실행 동기는 줄어듦

결과:
– 리마인더 300개 설정
– “많은 걸 하고 있네!” 착각
– 실제 실행: 10%

독서 기록 앱에 책을 등록만 하고 읽지 않았던 것처럼, 설정하는 것 자체가 성취감을 준다.

리마인더를 지웠다

정리된 알림 목록 - 5개만 남기고 나머지는 삭제된 깔끔한 화면

2개월 후, 대부분의 리마인더를 삭제했다.

지운 것: 295개

남긴 것: 5개만

남긴 리마인더 기준:

  1. 진짜 잊으면 큰일 나는 것
  2. 외부 사람과의 약속
  3. 법적 마감일
  4. 결제일 (연체료 발생)

  5. 매일 반복이 아닌 것

  6. 특정 날짜
  7. 일회성 이벤트

  8. 알림만으로 충분한 것

  9. 추가 행동이 간단함
  10. 즉시 처리 가능

남긴 5개 예시:

  1. 분기별 세금 신고 (분기당 1회)
  2. 잊으면: 과태료
  3. 알림: 7일 전, 3일 전

  4. 중요 회의 (주 1-2회)

  5. 외부 사람 포함
  6. 알림: 1일 전, 1시간 전

  7. 생일 축하 (연 10회)

  8. 가까운 사람만
  9. 알림: 1일 전

  10. 구독 갱신일 (월 1회)

  11. 확인 후 해지 여부 결정
  12. 알림: 3일 전

  13. 건강검진 (연 1회)

  14. 예약 필요
  15. 알림: 1개월 전

총 5개, 월 평균 알림: 10-15개

지운 295개:
– 물 마시기 → 갈증 나면 마심
– 스트레칭 → 몸이 뻐근하면 함
– 책 읽기 → 읽고 싶을 때 읽음
– 이메일 확인 → 필요할 때 확인
– 모든 일상 루틴 → 습관으로 만들거나 포기

북마크 847개를 정리했지만 결국 검색만 쓴 것처럼, 많다고 좋은 게 아니다.

역설적인 결과

리마인더를 줄인 후:

알림 수:
– 하루 30-40개 → 하루 1-2개

놓친 중요 일정:
– 월 3-4건 → 월 0건

실행률:
– 알림의 10% 실행 → 알림의 95% 실행

스트레스:
– 알림 피로 심각 → 거의 없음

역설:
알림을 줄일수록, 더 잘 지켰다.

깨달은 것

리마인더의 함정:

1. 알림이 많으면 전부 무시한다
– 하루 30개 알림 = 소음
– 하루 2개 알림 = 중요 신호

2. 중요도 구분이 안 되면 의미 없다
– “물 마시기”와 “중요 회의”가 같은 알림
– 뇌는 구분 못 함
– 전부 무시

3. 반복 알림은 습관화된다 (나쁜 의미로)
– 매일 오는 알림 = 배경 소음
– 뇌가 자동으로 필터링
– 듣지 않게 됨

4. 리마인더 ≠ 책임 해결
– 알림 설정 ≠ 실행
– 진짜 중요하면 기억함
– 알림 없어도 함

5. 적게 설정할수록 효과적
– 알림 300개 = 가치 없음
– 알림 5개 = 매우 중요

클라우드에 파일을 모았지만 찾지 못했던 것처럼, 양이 많으면 오히려 관리 못 한다.

리마인더가 필요한 경우

언제 리마인더가 효과적인가?

✅ 좋은 리마인더:

  1. 일회성 이벤트
  2. 생일, 기념일
  3. 특별 약속
  4. 연례 행사

  5. 긴 주기 반복

  6. 분기별 점검
  7. 연간 행사
  8. 6개월마다 교체

  9. 중요 + 쉽게 잊힘

  10. 외부 사람 미팅
  11. 법적 마감일
  12. 결제일

❌ 나쁜 리마인더:

  1. 매일 반복
  2. 물 마시기
  3. 스트레칭
  4. 책 읽기
    → 습관으로 만들거나 포기

  5. 사소한 것

  6. 눈 운동
  7. 자세 교정
    → 알림 없어도 되는 것

  8. 즉시 실행 안 되는 것

  9. “운동하기” (시간 필요)
  10. “책 읽기” (집중 필요)
    → 일정으로 블록킹

대안: 컨텍스트 트리거

알림 대신 상황 기반 트리거:

물 마시기:
– ❌ 2시간마다 알림
– ✅ 책상 위에 물병 두기

스트레칭:
– ❌ 1시간마다 알림
– ✅ 화장실 갈 때 스트레칭

책 읽기:
– ❌ 매일 밤 10시 알림
– ✅ 침대 옆에 책 놓기

이메일 확인:
– ❌ 하루 3번 알림
– ✅ 점심/퇴근 전 루틴

운동:
– ❌ 매일 오후 7시 알림
– ✅ 캘린더에 블록킹 (30분)

핵심:
알림이 아니라 환경과 루틴.

알림 다이어트 가이드

단계별 리마인더 줄이기:

1단계: 전체 목록 확인
– 현재 설정된 모든 리마인더 나열
– 예: 300개

2단계: 분류

A급: 절대 필요
– 잊으면 큰 손해
– 외부 의존성 있음
– 일회성 or 긴 주기

B급: 있으면 좋음
– 잊어도 치명적이지 않음
– 스스로 기억 가능

C급: 불필요
– 매일 반복
– 사소한 것
– 습관으로 대체 가능

3단계: C급 전체 삭제
– 과감하게 지우기
– 습관으로 만들거나 포기

4단계: B급 50% 삭제
– 정말 필요한지 재검토
– 대부분 기억 가능

5단계: A급만 유지
– 5-10개 정도만 남김

6단계: 2주 테스트
– 놓친 것 있나 확인
– 필요하면 추가 (신중하게)

결론: 적을수록 효과적

리마인더의 역설은 명확하다.

문제:
– 알림 많이 설정 = 전부 무시
– 중요한 것 구분 안 됨
– 책임 회피

해결책:
– 5-10개만 유지
– 진짜 중요한 것만
– 나머지는 습관이나 환경으로

알림 300개 설정하고 10% 실행하는 것보다, 알림 5개 설정하고 100% 실행하는 게 100배 낫다.

가장 효과적인 리마인더 시스템은 리마인더가 거의 없는 것이다.

“The best reminder is not needing one.”

진짜 중요한 건 알림 없이도 기억한다. 알림이 필요한 건 정말 중요하지 않거나, 시스템이 잘못됐거나.

리마인더는 백업이지 메인 시스템이 아니다.


P.S. 이 글을 쓰고 리마인더 앱을 확인했다. 미확인 알림 43개. 전부 삭제했다. 중요했다면 이미 기억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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