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작년 이맘때, 나는 노션(Notion)에 완전히 빠져 있었다. 유튜브에서 “노션 활용법”, “노션 템플릿”, “노션으로 인생 관리하기” 같은 영상들을 정주행했고, 각종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는 화려한 대시보드 스크린샷을 보며 감탄했다.
“이거다! 이걸로 내 인생을 정리하면 모든 게 해결될 거야!”
그렇게 시작된 노션 여정은 6개월 만에 끝이 났다. 지금 내 노션 워크스페이스는 먼지만 쌓인 채 방치되어 있다.
시작은 화려했다
노션의 매력은 명확했다. 노트, 할 일 목록, 캘린더, 데이터베이스… 심지어 칸반 보드까지. 하나의 앱으로 모든 것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처음 2주 동안은 정말 열심히 했다.
– 업무용 데이터베이스 구축
– 개인 프로젝트 관리 시스템 설계
– 독서 노트 템플릿 제작
– 습관 트래커 페이지 구성
– 일일/주간/월간 회고 템플릿 작성
각 페이지마다 아이콘을 고르고, 커버 이미지를 설정하고, 관계형 데이터베이스를 연결하고… 정말 재미있었다. 시스템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중독성이 있었다. 캘린더를 15분 단위로 완벽하게 채워넣던 때와 똑같았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였다
1. 완벽한 시스템 만들기에 집착하게 됨
“아, 이 템플릿은 좀 더 개선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할 일을 기록하려고 노션을 켰다가, 1시간 동안 템플릿 구조만 수정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정작 해야 할 일은 하나도 안 하고.
새로운 템플릿을 발견하면 “이걸 내 시스템에 어떻게 통합할까?” 고민하느라 또 몇 시간이 날아갔다.
2. 구조가 복잡해질수록 쓰기 귀찮아짐
처음엔 간단했던 시스템이 점점 복잡해졌다.
– “이 페이지는 어느 데이터베이스에 연결해야 하지?”
– “태그를 이렇게 쓰는 게 맞나? 저렇게 쓰는 게 맞나?”
– “이 정보는 어디에 기록해야 하지?”
간단한 메모 하나 남기는 데도 “어느 페이지에 어떤 형식으로?” 고민하게 되었다. 결국 빠른 메모가 필요할 땐 휴대폰 기본 메모장을 쓰게 되었다.
3. 로딩 속도와 오프라인 문제
노션은 클라우드 기반이다. 장점이자 단점이다.
– 인터넷이 느린 곳에서는 페이지 로딩이 답답했다
– 지하철에서 글을 쓰려고 하면 동기화 문제로 스트레스
– 서버가 느려지는 날엔 그냥 작업을 포기
급하게 뭔가 확인하거나 기록해야 할 때, 로딩 시간 3초가 영겫처럼 느껴졌다. Slack에서 즉각 응답을 요구받던 압박이 떠올랐다—도구가 느리면 오히려 스트레스만 쌓인다.
4. 실제 작업보다 ‘정리’에 더 많은 시간 소비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
노션에 일정을 정리하고, 할 일을 예쁘게 배치하고,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하는 데는 열심이었다. 시간 추적 앱으로 매일 생산성 점수를 확인하던 때도 그랬다—숫자는 올라가는데 실제 성과는 안 나왔다. 하지만 정작 실제 작업을 하는 시간은 줄어들었다.
“오늘도 노션 정리 열심히 했네!”라고 뿌듯해하지만, 실제로 완료한 중요한 업무는 없었다.
도구를 관리하는 것이 일이 되어버렸다. Evernote에서 수집만 하고 활용하지 않았던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였다.
결국 돌아간 곳: 단순함
6개월 후, 나는 결국 단순한 도구로 돌아갔다.
- 메모: 마크다운 에디터 (Obsidian 또는 VS Code)
- 할 일 목록: 종이 노트 + 애플 미리 알림
- 프로젝트 관리: 간단한 텍스트 파일
노션에 비하면 촌스럽고 기능도 적다. 하지만 이게 더 편했다.
- 빠르다 (로딩 시간 0초)
- 오프라인에서도 완벽히 작동
- 구조 고민할 필요 없음 (그냥 쓰면 됨)
- 실제 작업에 집중할 수 있음
배운 교훈: 도구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다
노션이 나쁜 도구라는 게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노션을 잘 활용하고 있고, 정말 효과적으로 쓰는 사람들도 많다.
문제는 나에게는 맞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산성 도구를 선택할 때 중요한 건:
– 얼마나 화려한가가 아니라
– 얼마나 빠르게 쓸 수 있는가
– 얼마나 적은 고민으로 쓸 수 있는가
– 도구 자체가 아닌 실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가
IFTTT와 Zapier로 복잡한 자동화를 만들다가 설정 시간만 늘어난 경험도 같은 교훈을 줬다. 도구가 강력할수록 함정도 컸다.
노션은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그 강력함이 나에게는 오히려 독이 되었다.
지금은 훨씬 단순한 도구를 쓰지만, 실제로 하는 일은 훨씬 많아졌다.
당신에게 맞는 도구를 찾아라
이 글을 읽고 “나도 노션 지워야겠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 도구가 당신을 위해 일하는가, 당신이 도구를 위해 일하는가?
– 도구를 ‘관리’하는 시간이 실제 ‘작업’ 시간보다 많지 않은가?
– 도구가 복잡해서 오히려 스트레스를 주진 않는가?
할 일 관리 앱에서도 할 일 정리 자체가 또 다른 할 일이 되는 똑같은 함정에 빠지기 쉽다.
만약 그렇다면, 한 단계 더 단순한 도구로 돌아가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화려함보다 단순함이, 많은 기능보다 빠른 실행이 중요하다. 완벽한 시스템보다는 꾸준한 실행이 더 가치 있다. 습관 트래커의 연속 일수에 집착하다 지쳤던 경험이 이를 증명한다.
노션을 6개월 쓰고 버린 건 실패가 아니다.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은 과정이었다.
이 글은 “Productivity Paradox” 시리즈의 첫 번째 포스트입니다. 생산성 도구를 시도했다가 포기한 솔직한 경험담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