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 메모로 모든 아이디어를 녹음했는데 정리만 하다가 끝났다

“음성 메모면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음성 메모면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을 수 있어"

샤워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아, 이거 대박인데!”

급하게 샤워를 끝내고 나와서 폰을 잡았다. 근데 이미 까먹었다. 분명 좋은 생각이었는데…

“다음엔 절대 놓치지 말아야지.”

Evernote에 모든 걸 저장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도 아이디어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었다.

유튜브에서 봤다. “생산적인 사람들의 비밀 – 음성 메모 활용법”

“운전 중에도, 걸으면서도, 샤워하면서도 아이디어를 잡을 수 있습니다.”

방수 블루투스 스피커를 샀다. 샤워실에 설치했다.

“이제 아이디어를 놓칠 일은 없어!”


녹음이 시작됐다

녹음이 시작됐다

음성 메모 앱이 가득 찬 화면

처음엔 좋았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블로그 주제… 생산성 앱 비교글 쓰면 좋겠다.”
점심 먹다가: “저녁에 뭐 먹지… 아 삼겹살 먹고 싶다.”
퇴근길에: “주말에 뭐 하지… 영화 보러 가야겠다.”

녹음 버튼 누르기가 너무 쉬웠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녹음했다. 아이디어, 할 일, 일기, 감상…

1주일 후, 음성 메모가 87개가 됐다.

2주일 후, 147개.

한 달 후, 312개. 클라우드에 모든 걸 저장하던 습관이 음성으로 옮겨갔을 뿐이었다.

“언제 다 정리하지?”


들어보니 문제가 있었다

들어보니 문제가 있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음질이 안 좋았다. 바람 소리, 주변 소음, 웅웅거리는 목소리.

“어제 생각한 거… 그거… 뭐였더라…”

맥락이 없었다. 왜 녹음했는지 기억이 안 났다.

“아, 이건 좋은 아이디어였는데!”

3초짜리 메모. “그거… 그거 해야 돼.” 그게 뭔지 몰랐다.

312개 중에서 실제로 쓸만한 건 20개도 안 됐다. 나중에 읽기에 저장하고 읽지 않았던 경험과 똑같았다.

나머지는? 그냥 삭제해야 할 소음이었다.


텍스트로 옮기는 게 일이 됐다

음성을 텍스트로 변환하는 모습

“음성은 검색이 안 되잖아. 텍스트로 바꿔야지.”

Otter.ai를 썼다. 자동 음성 인식.

결과는 처참했다.

원본: “브레인스토밍 세션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정리해야 해”
변환: “브레인 소닥 세션에서 나온 아 이데아를 정 이래야”

수동으로 수정하기 시작했다.

음성 메모 1개당 평균 3분 소요. 312개면 936분. 15시간 36분.

“이건 아닌데…”


분류 시스템도 만들었다

“정리해야 쓸 수 있지.”

폴더를 만들었다.

  • 아이디어
  • 블로그
  • 사이드 프로젝트
  • 책 쓰기
  • 할 일
  • 업무
  • 개인
  • 일기
  • 기타

근데 하나의 메모가 여러 카테고리에 걸쳐 있었다.

“이건 아이디어인가, 할 일인가?”

분류하다가 포기. 그냥 ‘기타’에 다 넣었다. 북마크를 완벽하게 정리하려다 실패했던 경험이 떠올랐다.


“그래서 뭐 실행했어?”

한 달 동안 녹음한 아이디어: 312개
텍스트로 변환한 아이디어: 47개
분류한 아이디어: 23개
실제로 실행한 아이디어: 2개

나머지 310개는 어디 갔냐고?

폰 어딘가에서 잠자고 있다. 영원히.

녹음하는 건 쉬웠다. 정리하는 건 어려웠다. 실행은 더 어려웠다. 메모 앱에 모든 걸 저장하고 찾아보지 않았던 경험과 정확히 같은 패턴이었다.


아이디어는 녹음보다 행동이다

깨끗한 메모장 한 권

어느 날 깨달았다.

좋은 아이디어는 녹음 안 해도 기억난다. 진짜 중요하면 잊혀지지 않는다.

녹음해야만 기억나는 아이디어?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던 거다.

“나중에 정리해야지” 하고 녹음만 해두는 건, 아이디어를 저장한 게 아니다. 그냥 미룬 거다. 메모만 하고 다시 보지 않았던 함정과 똑같은 실수였다.


진짜 아이디어 관리법

친구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바로 행동한다.

“블로그 쓰면 좋겠다” 생각하면, 그 자리에서 제목이라도 쓴다. 10분이면 된다.

“이 책 읽어야지” 생각하면, 바로 장바구니에 담는다. 30초면 된다. 독서 기록 앱에 책만 등록하던 때와는 다른 접근이었다.

녹음하고 나중에 정리하는 것보다, 그 자리에서 1분이라도 행동하는 게 낫다.

나중은 안 온다.


결국 깨달았다

아이디어의 가치는 녹음에 있지 않다. 실행에 있다.

312개 녹음 중 2개만 실행했다면, 차라리 2개만 녹음하고 바로 실행하는 게 나았다.

지금 내 음성 메모 사용법:
– 운전 중 급한 할 일 메모 (나중에 바로 실행)
– 그 외에는 그냥 메모장에 쓰기

이게 전부다.

음성 인식, 자동 변환, 분류 시스템? 다 지웠다.


녹음은 행동이 아니다

“아이디어를 잡아야 해!”라고 생각하며 녹음 버튼을 누르는 건, 행동한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근데 녹음은 행동이 아니다. 그냥 미루기의 다른 형태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녹음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뭐라도 하자.

제목이라도 쓰자. 첫 문장이라도 쓰자. 검색이라도 하자.

1분 안에 할 수 있는 행동을 하자.

그게 312개 녹음보다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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