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정하면 개선된다고 했다


“측정하지 않으면 관리할 수 없다.”
“데이터가 답을 알려준다.”
“숫자로 보면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경영학 책에서 배운 원칙이다. 완벽한 생산성 시스템을 찾아 헤매던 시절에도 이 말을 믿었다.
내 생산성도 측정하면 개선되겠지!
측정 도구 수집

계기:
“왜 나는 바쁜데 성과가 없을까?”
“시간이 어디로 새는지 모르겠어.”
검색: “생산성 측정” “시간 추적 앱”
발견한 도구들:
1. 시간 추적 앱
– RescueTime
– Toggl
– 자동 추적
– 카테고리별 분석
시간 추적 앱으로 하루를 분석했던 경험이 떠올랐지만, 이번엔 더 체계적으로 해보기로 했다.
2. 습관 트래커
– Streaks
– Habitify
– 연속 달성
– 통계 그래프
습관 트래커를 500일 채웠지만 습관은 안 생겼던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종합적으로 측정하니 다를 거라 생각했다.
3. 목표 관리 앱
– Goals
– Strides
– 진행률 표시
– 마일스톤
4. 집중도 측정
– Focus@Will
– Forest
– 집중 시간 기록
– 방해 횟수
5. 수면/에너지 추적
– Sleep Cycle
– Rise
– 수면 품질
– 에너지 레벨
수면 추적을 하다가 오히려 잠을 못 잤던 적도 있었지만, 에너지 관리를 위해 다시 시작했다.
“이거 다 쓰면 내 생산성이 완전히 파악되겠다!”
전부 설치.
측정 시스템 구축

아침:
– 수면 품질 확인 (Sleep Cycle)
– 에너지 레벨 기록 (노트)
– 오늘 목표 설정 (Goals)
업무 중:
– 시간 추적 시작 (Toggl)
– 집중 세션 시작 (Forest)
– 30분마다 진행 상황 체크
저녁:
– 습관 체크 (Streaks)
– 하루 시간 분석 (RescueTime)
– 목표 달성률 확인 (Goals)
– 일기 작성 (노트)
주간:
– 주간 리뷰
– 데이터 분석
– 다음 주 계획
“완벽한 측정 시스템이야!”
첫 주: 데이터 수집
월요일

아침: 7시간 23분 수면, 품질 82%
에너지: 7/10
업무 시작.
Toggl 시작 버튼 누름.
Forest 시작.
“좋아, 추적 시작!”
30분 후.
“진행 상황 기록해야지.”
노트 앱 열기. 뭐 했는지 적기.
다시 업무.
또 30분 후.
“기록 시간이다.”
하루 끝.
저녁 기록:
– 총 근무 시간: 8시간
– 집중 시간: 4시간 20분
– 방해 횟수: 12회
– 습관 체크: 5/7 완료
– 목표 달성률: 60%
기록에 걸린 시간: 45분
둘째 주: 분석 시작
데이터가 쌓였다.
“이제 분석해보자!”
월요일 저녁:
RescueTime 대시보드.
- 생산적 시간: 62%
- 소셜미디어: 1시간 20분
- 이메일: 2시간 10분
- 회의: 1시간 30분
“소셜미디어 1시간 20분? 줄여야겠다.”
화요일:
소셜미디어 차단.
결과: 1시간 10분.
“어? 10분밖에 안 줄었네?”
수요일:
더 엄격하게.
결과: 1시간 5분.
“왜 안 줄지?”
목요일:
분석.
“차단해도 다른 방해 요소가 채우는구나.”
분석에 걸린 시간: 매일 30분
셋째 주: 최적화 시도
데이터를 보고 최적화 시작.
발견 1: 오전 10시-12시 가장 집중력 높음
대책: 오전에 중요한 일 배치
결과: 집중 시간 10% 증가
발견 2: 점심 후 2시간 생산성 급락
대책: 점심 후 산책 추가
결과: 변화 거의 없음
발견 3: 목요일마다 생산성 낮음
대책: 목요일 회의 줄이기
결과: 회의 못 줄임 (다른 사람들 일정)
결론:
측정해서 알게 된 것: 많음
실제로 바꿀 수 있는 것: 별로 없음
넷째 주: 측정 피로
아침.
“또 기록해야 하나…”
수면 앱 확인 → 귀찮음
에너지 레벨 기록 → 대충
목표 설정 → 어제랑 복붙
업무 중.
Toggl 시작 → 깜빡
30분 체크 → “나중에 할게”
Forest → 중간에 취소
저녁.
습관 체크 → 5분 만에 대충
시간 분석 → 스킵
일기 → “오늘 바빴음”
측정 자체가 스트레스.
“측정하는 게 지쳐서 일을 못 하겠어…”
한 달 결과
측정 시간:
– 아침 기록: 15분
– 업무 중 체크: 30분
– 저녁 분석: 30분
– 주간 리뷰: 2시간
– 총: 주당 7시간
발견한 인사이트:
– 오전이 집중력 높음 (알고 있었음)
– 소셜미디어 시간 많음 (알고 있었음)
– 회의가 생산성 낮춤 (알고 있었음)
실제 변화:
– 거의 없음
생산성:
– 측정 전과 비슷
– 아니, 측정 시간만큼 감소
문제를 분석했다
왜 측정이 생산성을 떨어뜨렸을까?
1. 측정 자체가 시간이 든다
주당 7시간 = 거의 하루 근무
그 시간에 일했으면 생산성 상승.
2. 측정해도 바꿀 수 없는 게 많다
- 회의? 남들이 정함
- 집중력 저하? 체력 문제
- 방해? 예측 불가
3. 이미 아는 것만 확인
“오전이 집중 잘 된다” – 몸이 안다
“SNS 많이 본다” – 알고 있다
데이터로 확인할 필요 없었음.
메모를 500개 했지만 다시 본 건 0개였던 경험과 같다. 기록한다고 활용하는 게 아니다.
4. 측정이 행동을 바꾸진 않는다
숫자를 안다고 습관이 바뀌진 않는다.
1시간 20분 본 걸 알아도, 다음날 또 본다.
5. 관찰자 효과
측정하느라 원래 하던 것을 못 함.
“기록해야 하니까 지금 못 해”
새로운 접근

규칙:
1. 측정 도구 1개로
5개 → 1개
“오늘 중요한 일 3개” 만 적기. 끝.
2. 측정 시간 5분 이하
아침 2분: 오늘 할 일
저녁 2분: 한 일 체크
나머지 삭제.
3. 느낌으로 충분
“오늘 집중 잘 됐다/안 됐다”
숫자 필요 없음.
4. 분석 대신 실행
데이터 분석할 시간에 그냥 일하기.
“왜 안 됐을까?” 대신 “다시 해보자.”
5. 측정은 가끔만
매일 → 주 1회
정기적으로 전체 그림만 체크.
현재 상태
사용 중인 측정:
– 종이 노트에 오늘 할 일 3개
– 체크 표시
끝.
버린 것:
– RescueTime, Toggl, Streaks, Goals, Forest
– 30분 단위 체크
– 일일 분석
– 주간 리뷰 시트
생산성 도구에 200만원을 썼던 때를 떠올리면서 과감히 버렸다.
결과:
– 측정 시간: 주당 7시간 → 주당 20분
– 확보된 시간: 6시간 40분
– 생산성: 체감상 상승 (측정 안 하니까 모름)
– 스트레스: 대폭 감소
깨달은 것
1. 측정이 개선을 보장하진 않는다
측정 → 인사이트 → 행동 → 개선
이 체인이 끊기면 측정은 시간 낭비.
대부분 “행동”에서 끊긴다.
2. 몸이 이미 안다
“집중 잘 안 된다” – 느낌으로 안다
“피곤하다” – 측정 필요 없다
숫자로 확인받을 필요 없음.
3. 측정할 시간에 일하라
30분 분석 < 30분 일하기
단순한 진리.
4. 단순한 측정이 최고
“오늘 중요한 일 했나?” – 예/아니오
이것만으로 충분.
5. 완벽한 데이터는 없다
어차피 누락됨. 부정확함.
대충 알면 됨.
30일 챌린지를 3일 만에 포기했던 경험도 있다. 완벽한 기록보다 그냥 시작하는 게 낫다.
결론: 측정의 역설
생산성 측정 함정:
문제:
– 측정 자체가 시간 소모
– 알아도 못 바꾸는 것 많음
– 이미 아는 것만 확인
– 숫자가 행동을 바꾸진 않음
– 분석에 빠져 실행 못 함
해결:
– 측정 도구 1개로 축소
– 측정 시간 5분 이하
– 느낌으로 충분
– 분석 대신 실행
– 가끔만 전체 점검
“측정하면 개선된다”는 전제가 틀렸다.
행동하면 개선된다.
측정은 행동을 도와줄 때만 의미 있다.
행동 없는 측정은 시간 낭비일 뿐.
30분 분석하는 대신 30분 일하라. 그게 진짜 생산성이다.
P.S. 이 글을 쓰는 데 걸린 시간은 측정 안 했다. 그냥 썼다. 그게 더 빨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