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맵으로 생각을 시각화하면 명확해질 거야”

유튜브에서 본 영상이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마인드맵을 쓴다!”
화려한 마인드맵 예시들—중심에서 뻗어나가는 가지들, 색깔별로 분류된 노드들, 아이콘과 이미지로 장식된 맵들.
“이거다.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면 복잡한 문제도 한눈에 보이겠네!”
그래서 XMind를 깔았다. 그리고 모든 것을 마인드맵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모든 걸 마인드맵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 2주는 재미있었다.
- 프로젝트 기획 마인드맵
- 독서 노트 마인드맵
- 주간 계획 마인드맵
-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마인드맵
- 학습 내용 정리 마인드맵
중심 노드에서 가지를 뻗고, 서브 노드를 추가하고, 색깔을 입히고, 아이콘을 붙이고…
마인드맵을 만드는 과정 자체가 생산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오늘 마인드맵 3개 만들었어!” 하면서 뿌듯해했다. 정작 그 마인드맵으로 뭘 실행했는지는 기억 안 나지만.
생각을 정리하는 게 아니라 “예쁘게 그리기”가 되었다

문제는 금방 드러났다.
마인드맵을 만들 때 고민하는 것들:
– 이 노드는 어느 색깔로 할까?
– 서브 노드를 오른쪽에 둘까, 왼쪽에 둘까?
– 이 아이콘이 더 예쁘네, 저 아이콘으로 바꿔야겠다
– 폰트 크기 조정
– 레이아웃 재배치
실제 내용을 생각하는 시간보다, 디자인 고민하는 시간이 더 길었다.
노션에서 템플릿을 완벽하게 만드느라 실제 작업을 못 했던 것처럼, 마인드맵도 도구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간단한 메모 하나 남기려고 해도 “이걸 마인드맵에 어떻게 넣지?” 고민하다가 그냥 안 적었다.
마인드맵이 많아질수록 찾기 힘들어졌다
3개월 후, XMind 파일 개수를 세어봤다.
총 47개.
- 프로젝트-기획-v1.xmind
- 프로젝트-기획-v2-수정.xmind
- 프로젝트-기획-최종.xmind
- 프로젝트-기획-진짜최종.xmind
- 독서노트-아토믹해빗.xmind
- 독서노트-아토믹해빗-요약.xmind
- 주간계획-10월1주.xmind
- …
“그때 정리했던 내용이 어디 있더라?”
마인드맵 파일을 하나씩 열어보는데, 어느 파일에 뭐가 있는지 기억이 안 났다.
결국 검색도 안 되고, 찾기도 힘들고, 그냥 방치되었다.
데스크톱에 폴더를 8개 만들었지만 필요한 파일은 검색으로 찾았던 것과 똑같았다. 많이 만들수록 찾기는 더 어려웠다.
실제로 실행한 건 하나도 없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것이었다.
마인드맵은 많은데, 실행한 건 없었다.
“프로젝트 기획” 마인드맵: 화려하게 정리했지만 → 실행 안 함
“독서 노트” 마인드맵: 책 내용 요약했지만 → 다시 안 봄
“아이디어 브레인스토밍” 마인드맵: 30개 아이디어 적었지만 → 하나도 안 시작함
독서 앱에서 책을 등록만 하고 읽지 않았던 것처럼, 마인드맵도 만드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생각을 정리하면 뭔가 진전이 있을 것 같았지만, 실제로는 정리만 하고 실행은 안 했다.
종이 한 장이 더 효과적이었다
어느 날, XMind가 느려서 켜지지 않았다.
급한 회의가 있었고, 아이디어를 빨리 정리해야 했다.
할 수 없이 종이에 그냥 적었다.
- 중심에 주제
- 주변에 떠오르는 생각들 막 적기
- 화살표로 연결
- 끝
5분 만에 끝났다.
색깔도 없고, 아이콘도 없고, 예쁘지도 않았다.
하지만 생각은 명확했다. 그리고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XMind로 30분 걸려 만든 마인드맵보다, 종이에 5분 만에 끄적인 게 훨씬 유용했다.
마인드맵 앱을 지우고 나서
XMind를 삭제했다.
처음엔 불안했다. “생각을 정리할 도구가 없는데?”
하지만 앱 없이도 생각은 충분히 정리되었다.
Before (마인드맵 앱 사용):
– 시간: 아이디어 하나 정리하는 데 30분
– 결과: 예쁜 마인드맵 파일 47개
– 실행: 거의 0개
– 스트레스: 높음 (파일 관리, 앱 사용법)
After (종이 + 간단한 메모):
– 시간: 아이디어 하나 정리하는 데 5분
– 결과: 지저분한 메모지 몇 장
– 실행: 실제로 진행
– 스트레스: 없음
시간 추적 앱에서 숫자만 보고 실제 성과는 못 봤던 것처럼, 마인드맵도 보기 좋은 결과물에만 집중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이렇게 한다
마인드맵 앱 대신:
1. 종이 노트
– A4 용지나 노트에 자유롭게 끄적이기
– 지우고, 화살표 그리고, 동그라미 치고
– 예쁘지 않아도 괜찮음
2. 텍스트 메모
– 계층 구조는 들여쓰기로
– 빠르게 타이핑
– 검색 가능
3. 화이트보드/벽
– 큰 아이디어는 포스트잇으로
– 물리적으로 옮기고 재배치
– 사진 찍어서 보관
핵심은: 도구가 아니라 생각 자체에 집중하는 것
배운 교훈: 생각 정리의 목적은 실행이다
마인드맵 앱이 나쁜 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잘 활용한다.
하지만 나에게는 독이 되었다.
마인드맵을 만드는 데 집중하다 보니:
– 생각보다 디자인이 중요해졌고
– 정리보다 파일 관리가 시간 잡아먹었고
– 실행보다 문서화가 목적이 되었다
생각 정리의 진짜 목적은:
– 예쁜 마인드맵 만들기가 아니라
– 명확한 다음 액션 찾기
– 복잡한 구조 만들기가 아니라
– 핵심 아이디어 파악하기
습관 트래커에서 체크박스만 채우고 실제 습관은 안 만들어졌던 것처럼, 마인드맵도 형식이 내용을 대체하는 함정에 빠졌다.
목표 15개를 완벽하게 정리했지만 달성은 0개였던 것도 같았다. 정리와 계획이 실행을 대체했다.
당신에게 정말 마인드맵 앱이 필요한가?
한 번 생각해보자.
- 마인드맵 만드는 시간 vs 실제로 생각하는 시간?
- 만든 마인드맵을 다시 보는가?
- 마인드맵 후 실행으로 이어지는가?
- 종이에 끄적이는 게 더 빠르지 않은가?
만약 마인드맵 앱이 생각을 방해한다면, 버려도 괜찮다.
가장 좋은 생각 정리 도구는:
– 화려하지 않아도
– 파일로 저장 안 해도
– 검색 안 돼도
당신의 생각을 명확하게 하고, 실행으로 이어지게 하는 것이다.
때로는 그게 종이 한 장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