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중에 읽기에 저장만 하고 읽은 적은 없었다 – 디지털 수집광의 착각

“나중에 꼭 읽을 거야”

나중에 꼭 읽을 거야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좋은 글을 발견했다.

“오, 이거 좋은데? 근데 지금은 시간이 없네.”

그래서 Pocket에 저장했다.

“나중에 읽기” 버튼 클릭.

“좋아, 이제 안전하게 저장됐어. 나중에 읽으면 돼.”

마음이 편해졌다.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 것 같았다.

그렇게 “나중에 읽기” 수집이 시작되었다.

모든 걸 “나중에 읽기”에 저장했다

모든 걸 나중에 읽기에 저장했다

하루에 저장하는 글:

  • 아침: 뉴스레터에서 흥미로운 글 3개
  • 점심: 트위터에서 공유된 블로그 글 2개
  • 오후: 유튜브 영상 요약 글 1개
  • 저녁: 레딧에서 본 긴 포스트 2개

하루 평균 8개

일주일이면 56개, 한 달이면 240개.

“좋은 콘텐츠를 놓치지 않고 모으고 있어!”

저장할 때마다 뿌듯했다.

Evernote에 모든 걸 저장하면 지식이 쌓일 거라 믿었던 착각과 똑같았다. 저장 = 학습이라는 착각.

완벽한 분류 시스템을 만들었다

완벽한 분류 시스템을 만들었다

Pocket 안에 글이 쌓이니 정리가 필요했다.

태그 시스템:

#개발 - 프로그래밍 관련
#디자인 - UI/UX 글
#비즈니스 - 창업, 마케팅
#자기계발 - 생산성, 습관
#과학 - 흥미로운 연구
#장기읽기 - 긴 글 (30분 이상)
#빠른읽기 - 짧은 글 (5분 이내)
#즐겨찾기 - 정말 좋은 글

글을 저장할 때마다:
– 태그 2-3개 붙이기
– 즐겨찾기 별표 표시
– 나중에 읽을 시간 예상

“이제 완벽해! 체계적으로 읽을 수 있겠다!”

Trello 보드를 완벽하게 만드는 데 몰두했던 때가 떠올랐다. 시스템이 목적이 되었다.

저장하는 게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기한 심리 현象:

좋은 글을 Pocket에 저장하면:
뭔가 배운 것 같은 기분
– 나중에 읽을 거니까 안심
– 생산적인 일을 한 것 같은 뿌듯함

실제로는:
– 제목만 보고 저장
– 내용은 안 읽음
– 다시 볼 일 없음

저장 버튼이 “학습 완료” 버튼처럼 느껴졌다.

독서 앱에 책 등록이 독서인 줄 알았던 착각과 똑같았다. 기록이 실행을 대체했다.

“나중에”는 절대 오지 않았다

3개월 후, Pocket을 열어봤다.

저장된 글: 537개

“와… 이렇게 많이 모았네? 이제 읽어야지!”

읽기 시작:

  1. 첫 번째 글 제목: “효율적인 코드 리뷰 방법”
  2. 저장한 날짜: 3개월 전
  3. 지금 생각: “이미 아는 내용일 것 같은데…”
  4. 결과: 건너뛰기

  5. 두 번째 글: “2023년 디자인 트렌드”

  6. 저장한 날짜: 2개월 전
  7. 지금 생각: “2023년? 이미 지났는데…”
  8. 결과: 건너뛰기

  9. 세 번째 글: “블록체인 기초”

  10. 저장한 날짜: 2개월 전
  11. 지금 생각: “블록체인… 지금은 관심 없어”
  12. 결과: 건너뛰기

537개 중 읽은 것: 0개

저장할 때는 “꼭 읽어야 할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하나도 읽고 싶지 않았다.

저장만 하고 읽지 않는 이유

왜 “나중에”는 오지 않을까?

1. 저장할 때와 나중의 관심사가 다르다
– 3개월 전: “AI 트렌드 궁금해!”
– 지금: “AI는 이제 관심 없어”

2. 너무 많아서 압박감
– 537개를 언제 다 읽지?
– 시작도 안 하게 됨

3. 신선도 문제
– 저장할 때는 “최신 정보”
– 3개월 후에는 “옛날 글”

4. 저장 자체가 목적이 됨
– 저장 = 뭔가 한 것 같은 기분
– 실제로 읽을 필요 못 느낌

습관 체크박스는 늘어나지만 진짜 습관은 생기지 않았던 함정이 떠올랐다. 행동과 결과는 달랐다.

OneTab에 브라우저 탭을 892개 저장했지만 3개만 다시 열었던 것과 같은 패턴이었다. 저장은 활용을 보장하지 않았다.

500개 저장 vs 5개 읽기

실험을 해봤다.

방법 1: “나중에 읽기” 사용
– 한 달 동안 Pocket 사용
– 저장한 글: 240개
– 실제로 읽은 글: 8개
– 읽기율: 3.3%

방법 2: “지금 아니면 안 읽기”
– 한 달 동안 Pocket 사용 안 함
– 흥미로운 글 발견하면: 지금 바로 읽거나, 아니면 포기
– 읽은 글: 12개
– 읽기율: 100%

저장 버튼이 없으니 오히려 더 많이 읽었다.

역설적이게도:
– “나중에 읽기” 있을 때: 저장만 하고 안 읽음
– “나중에 읽기” 없을 때: 지금 바로 읽거나 포기

타이머 없이 작업했을 때 오히려 더 집중됐던 경험이 생각났다. 도구 없이 하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저장된 글이 죄책감이 되었다

Pocket 열 때마다:

“읽지 않은 글 537개”

마치 숙제처럼 느껴졌다.

  • “이걸 언제 다 읽지…”
  •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하지…”
  • “저장만 하고 왜 실천을 안 하지…”

저장 버튼 하나가 스트레스가 되었다.

시간 추적 숫자를 보며 죄책감을 느꼈던 경험과 같았다. 생산성 도구가 죄책감을 만들었다.

집중 음악 플레이리스트 150곡을 수집하고 분류한 것도 같은 함정이었다. 수집과 정리가 실제 사용을 대체했다.

“나중에 읽기”를 지우고 나서

Pocket 계정을 삭제했다.

537개의 “나중에 읽을” 글이 사라졌다.

“혹시 중요한 글 있었으면 어쩌지?”

불안했다.

하지만:
– 지운 지 1개월: 후회 없음
– 중요한 글이었으면 다시 마주칠 것
– 정말 필요한 정보는 검색하면 나옴

537개 중 실제로 필요했던 글: 0개

Evernote의 892개 노트를 지웠지만 아무 문제없었던 경험이 떠올랐다. 많이 모은다고 가치가 생기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이렇게 한다

“나중에 읽기” 대신:

1. 지금 읽거나 포기하기
– 3분 안에 읽을 수 있으면: 지금 읽기
– 10분 이상 걸리면: 정말 중요한지 자문
– 중요하지 않으면: 그냥 닫기

2. 북마크는 최대 5개만
– 브라우저 북마크바에 5개만 허용
– 새로운 거 추가하려면: 기존 것 하나 삭제
– 강제로 선택하게 만들기

3. “읽었다”의 기준 바꾸기
– 전체를 다 읽을 필요 없음
– 핵심만 스캔하고 필요한 부분만 정독
– 3분 안에 가치 판단

4. FOMO 극복
– “놓치면 어쩌지” 두려움 버리기
– 정말 중요하면 다시 마주칠 것
– 모든 걸 알 필요 없음

핵심: 수집이 아니라 소화에 집중

배운 교훈: 저장은 학습이 아니다

“나중에 읽기” 기능이 나쁜 건 아니다. 잘 쓰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독이 되었다.

나중에 읽기를 쓰면서:
저장학습인 것처럼 착각했고
수집성장인 것처럼 느꼈고
을 보장한다고 믿었다

IFTTT로 자동화 레시피를 20개나 만들어두고 실제로는 2개만 쓴 것도 같은 문제였다. 설정해두면 언젠가 쓸 거라고 믿었다.

진짜 학습은:
– 537개 저장이 아니라 5개 정독
– 완벽한 태그가 아니라 지금 바로 읽기
– 나중에 읽기가 아니라 지금 아니면 포기

목표는 세웠지만 달성은 못 했던 아이러니가 생각났다. 계획과 실행은 달랐다.

당신에게 정말 “나중에 읽기”가 필요한가?

한 번 생각해보자.

  • 저장한 글을 실제로 읽는가?
  • “나중에”가 정말 오는가?
  • 저장 개수 vs 실제 읽은 개수?
  • 저장이 학습이라고 착각하지 않는가?

만약 “나중에 읽기”가 수집만 하는 도구라면, 버려도 괜찮다.

가장 좋은 독서 습관은:
– 500개 저장이 아니라
지금 5개 읽기
– 완벽한 분류가 아니라
읽거나 포기하는 결정

진짜 지식은 북마크 개수가 아니라 머릿속에 남은 생각이다.

“나중에”라는 말은 대부분 “절대”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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